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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소비한다. 20대인 내 눈에 세상은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예쁜 카페와 포토존은 쉴 새 없이 생겨나고 사라진다. 잘생긴 유명 아이돌의 사진은 모두가 화제로 삼고 있고 다들 가고 싶어 줄 서는 맛집의 음식은 꼭 사진 찍어 SNS 피드를 채워야만 한다.
이렇게 아름다움을 소비하는 것이 익숙했기에 처음 60년간 담담히 한국의 미를 담아낸 장인의 글은 낯설었다. 특히 최순우 선생께서 우리 화단에 있는 사대주의 풍조를 비판하시고 ‘싸구려 서양 그릇’에 대해 비판하실 때에는 오히려 반감이 들어 책을 내려놓기도 했었다.
그러나 선생이 가진 깊은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안목은 비단 시, 서화, 도자기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그의 삶 전체에 담겨있었다.
최순우 선생은 달빛이 스며든 창살에 담긴 쓸쓸한 아름다움을 알아볼 수 있는 분이셨다. 또 어린 딸아이가 꾸꾸하며 내는 새 흉내에도, 지음과의 안타까운 이별에도, 또 이름 모를 젊은 여인의 시체에서조차 삶이 주는 아름다움을 깊이 통찰하실 수 있는 분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아름다움에 대한 오랜 미학으로 축적되었다.
그것을 읽고 나니 비로소 눈이 뜨였다. 정선의 청풍계도에 담긴 거친 붓놀림의 신묘함과 아래에 있는 작은 선비의 모습에 원근감이 담겨 있다는 것이 보였다. 강희연의 인왕산도에 담긴 힘 있는 산줄기의 기세와 깊은 산의 형세를 짙은 먹이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비록 인쇄된 그림이지만 그 아름다움에 짧게 전율이 일었다.
무엇이든 빠르게 소비되는 시대다. 양질의 도서도, 뜻깊은 작품도 인터넷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어서 오히려 그만큼 쉽게 잊힌다. 수없이 쏟아지는 미디어들에 익숙한 우리 세대는 깊은 고찰과 탐색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최순우 선생의 삶은 이런 세대에게 다시 우리의 아름다움을 깊게 돌아보게 하는 화두를 던진다. 그의 눈으로 본 우리의 예술은 달랐다. 조선백자의 잘생긴 풍채와 김홍도 그림 속 사내의 솔직한 모습, 작자 미상의 미인도의 여인이 가진 유려한 자태는 우리나라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었던 전통의 미였다.
한 날 선생에게 어떤 젊은 화가가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방법에 관해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아름다움이란 어디에나 있는 것이며 그 화가가 밟고 있는 발밑에도 그의 옆에도 있지만 단지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그의 삶을 통해 우리가 우리의 아름다움을 깨닫고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면 최순우 선생의 60년에 걸친 미학은 우리에게는 전승해야 할 또 하나의 유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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