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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가 건축에 관하여 쓴 책이 ‘미학’이란 이름으로 간행되었을 때, 우리는 제목을 통해 책의 내용이 예술의 일반적 가치와 관련 있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책은 건축기법을 예로 들어 예술의 일반적 가치, 우리 삶에서의 가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반기능’은 그 대표적인 예시에 해당한다. 무용의 공간과 유사한 것으로, 이 ‘반기능’은 기능과 목적 중심의 건축에서 벗어나 빈 공간을 활용하여 건축물의 수명을 연장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목적에 치우친 기능적 건축은 목적이 달성되면 그 쓸모를 잃게 된다. 그러나 목적으로부터 자유로운 건축물은 언제든 다른 것으로 채워질 수 있고, 재해석 될 수 있다.
‘반기능’이 추구할만한 가치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산업자본주의는 인간을 도구로 설정하고 목적과 기능에 매몰된 삶으로 몰아넣는다. 이런 환경에서 개인은 자신의 기능을 찾고, 이를 증명하기 위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앞선 삶의 방식은 인간의 본질과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그 기능을 찾아주지 못한다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는 주변에서 자신의 기능을 찾지 못한 것으로 치부되는 사람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과도한 능력주의와 승자독식이 가져온 인간 소외는 신자유주의에서는 필연적 현상으로 치부되며, 승자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조롱과 모멸의 시선이 가해진다. 이런 구조 속에서 기능이 다 한 개인은 누구나 다른 능력을 지닌 인물로 대체될 수 있으며, 그 누구도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확고하게 주장할 수 없다. 현재가 정신적으로 빈곤한 시대임을 자각하고, 그 해결책의 일환으로서 반기능의 의미를 되새겨 보아야 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작품 중 〈silence & chitchat〉은 대표적인 반기능적 건축에 해당한다. 과도한 잡음에 매몰되지 않고 침묵과 잡담이 공존할 수 있는 공간, 열려 있는 가능성의 공간으로서 이 건축물은 설계되었다. 우리도 이러한 건축 방식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 하나의 가치나 기능에 매몰되지 않고, 여러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삶, 타인에 대해 열려있는 가능성으로서의 삶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글의 첫머리에서 제목에 ‘미학’이 사용된 이유를 언급했었다. 그런데 제목의 ‘빈자’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사실 이 책에서 빈곤에 관한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기도 하다. 단지 현대인이 추구할 만한 미적 가치를 논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승효상이 ‘반기능’을 내세워 논하고 있는 ‘빈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아마도 기능주의에 매몰돼 정서적 빈곤 상태에 놓여 있는 우리 모두가 아닐까. 무한성장과 인간의 도구화 속에서 점점 각박해져 가는 우리의 삶을 ‘빈자’라고 칭한 것은 아닐까.
다수의 전문가가 입을 모아 산업자본주의에 종언을 고하고 있는 지금, 모두가 빈자가 되어버린 지금이야말로 과도한 기능주의에서 벗어나 인간적 삶에 대해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빈자의 미학’은 우리 모두가 추구해볼 만한 가치를 논하고 있는 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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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감문]
올해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작년 대회에 참가했던 경험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 당시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해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원고지를 보니 무엇을 어떻게 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고민하느라 시간을 모두 허비해버리고, 1,000자도 채우지 못한 채 대회를 마쳐야 했다.
다시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작년의 기억을 떨쳐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실패의 경험으로 에세이 대회와의 인연을 마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논술 고사를 준비해본 적이 없어서, 백일장 양식에 익숙하지 않아서 등 많은 변명이 떠올랐지만 결국 극복은 나의 몫이라는 생각도 떠나지 않았다.
대회 준비를 하면서 원고지 쓰는 법을 다시 익혔다. 책을 꼼꼼히 뜯어 읽는 훈련이 더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할 수 있었다. 어떤 주제가 나올지 알 수 없으니 정리한 내용을 암기하듯이 외우기보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일상에서 고민과 질문을 계속했다. 대회 당일 글을 쓰면서 준비와 경험이 배신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좀 더 많은 준비와 경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나의 부족함을 계속 발견하고 보완해 나갈 수 있었으면 한다. 이런 기회를 마련해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