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번호
69358
작성일
2019.08.07
수정일
2019.08.07
작성자
장민주
조회수
30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첨부 이미지

   1991년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가 2차 세계대전에 소비에트(소련)군으로 참전한 여성들을 인터뷰하였다. 전쟁은 당연히 남성 중심이며, 그 또한 역사에서는 승리와 패배만을 기억할 뿐이다. 국가에 비해 한없이 작은 존재 인간, 인간 중에서도 더없이 작은 존재 여성을 중심에 두고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다. 전쟁터에도 여성이 있었다. 그들은 후방 지원만 한 것은 아니며 저격수 등 최정예로부터 병과에 구애됨 없이 존재했었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소비에트의 여성군인이 100만명이었다니 새삼 놀랍다.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작가의 글로 재탄생되면서 논픽션과 픽션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하여 이 책의 장르를 과연 무엇으로 부를지 잠시간 고민케 한다. 출판계는 이를 일명 목소리 소설(Novels of Voices)’라고 칭하였다. 그러나 소설은 아니다. 그렇다고 역사도 아니다. 이 중간쯤 경계에 있기에 다큐멘터리 산문이라 말하기도 한다.

 

   언젠가 한 역사학자가 역사는 문학의 사촌이라고 표현했을 때 학생시절 나는 놀랬다. 분명 우리가 받은 학교 교육으로 역사와 문학 사이에 쌓아놓은 담장은 너무도 높았기 때문이다. 사실과 허구라 집약되는 양 진영은 그야말로 갈 길이 다른 것처럼 보였다. 그 역사학자가 그런 발언을 한 맥락은 실증적인 역사학도 중요하지만, 사료의 부족으로 연구되지 못하는 공백들은 결국 합리적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 발언은 여전히 사학계에서는 요원한 일이다. 어차피 문학계에서는 소재이든, 배경이든 역사적 재료들을 사용하는 입장이므로 전혀 별개의 것으로 취급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이 책이 울림이 있다. 어떤 역사책보다 더 역사적이고, 실재적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전공하는 한 선생님은 본인이 하려던 작업이었다며 선수를 빼앗긴 것에 분해하기도 하였다.

 

   한국사회 남자들에게 군대의 경험은 평생의 안주거리와도 같다. 이제 막 제대를 하던, 10년이 지나던, 20년이 지나더라도 남자들의 주요 대화 레퍼토리는 군대이다. 그 군대의 경험은 인생에서는 쉽게 할 수 없는 단 한번의 시간이었기에 누구에게나 특별나게 기억되기 때문이다. 누가 얼마나 더 고생했는지, 반대로 누가 더 편하게 했는지, 남들은 할 수 없는 얼마나 신기한 일을 했는지 등을 베틀하듯 내어놓는다. 치열한 경쟁에 이기고자 하는 허세에 실제의 경험은 몇 배로 부풀려지기도 한다. 물론 고통의 시간으로 더이상 떠올리기조차 싫은 이들도 있겠지만, 많은 이들은 그 당시에는 썼지만, 지나고 나니 추억이었더라며 아름다운 마무리를 한다. 전쟁을 소재로 한 이 책은 단순히 이런 가쉽(gossip) 수준의 군대 얘기와 질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몇 날 며칠, 몇 주를 머리만 내놓고 목까지 늪에 잠겨 있었어. 우리 일행 중에 여자통신병이 있었는데,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참이었지. 아이가 배가 고파서…… 젖 달라고 보채는데…… 엄마도 먹은 게 없으니 젖이 나올 리 없었지. 아이가 울어댔어. 아이는 울지, 독일군 추격대는 코앞에 있지……수색견까지 데리고…… 만약 개들이 아이 울음소리를 듣기라도 하면, 우리는 다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어. 서른 명이나 되는 우리 목숨이 다………… 이해가 돼?

     결국 지휘관이 결단을 내렸어……

누구도 지휘관의 결정을 아이 엄마에게 차마 전하지 못하고 망설이는데, 그녀가 스스로 알아차리더군. 아이를 감싼 포대기를 물속에 담그더니 그대로 한참을 있었어…… 아기는 더이상 울지 않았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어…… 우리는 차마 눈을 들 수가 없었어. 눈을 들어 아기 엄마를 마주 대할 수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수도 없었지…… (46)

 

    

   비록 제2차세계대전 소비에트군의 이야기이지만, 공간과 시간을 넘어서서 나의 이야기처럼 숙연하게 한다. 그 누구에게도 하지 못할 말을 나에게만 한 듯, 어찌해야 할 지 모르는 내 가슴이 떨린다. 또한 이 책은 남성들이 알 수 없는 여성에 대한 이해를 돕기도 한다.

 

     여자들이 전쟁에 대해 아무리 이러니저러니 떠들어도, 기본적으로 여자들의 머릿속에는 전쟁은 살인행위라는 생각이 또렷이 박혀 있다. 그리고 여자들에게 전쟁은 힘겨운 일이자 평범한 보통의 삶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네들은 전쟁터에서도 노래를 하고, 사랑에 빠지고, 머리를 매만졌다……

여자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죽음에 대한 참을 수 없는 혐오와 두려움이 감쳐져 있다. 하지만 여자들이 그보다 더 견딜 수 없는, 원치 않는 일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다. 여자는 생명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선물하는 존재. 여자는 오랫동안 자신 안에 생명을 품고, 또 생명을 낳아 기른다. 나는 여자에게는 죽는 것보다 생명을 죽이는 일이 훨씬 더 가혹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29)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권위있는 기관에서, 학자가 썼다. 정치, 경제의 흐름들이 주요 기술대상이었고, 그 속에서 정치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이었다. 소위 왕조사, 정치사, 경제사, 사회사라는 거시사를 진정한 역사로 인식하였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정작 우리의 과거 삶을 잘 모른다. 어느 역사서를 뒤져도 일반인들의 삶이 어떠 했는지, 그들이 어떤 생각과 느낌을 갖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오늘날 일반인들의 목소리를 통해 역사를 재구성하고 해석하는 이른바 구술사(oral history)’가 조명받고 있다. 이 책은 구술사의 기법을 사용하면서도, 문학적 짜임과 필체를 이용하여 독자의 확장을 가져왔다. ‘부드러운 것이 더 강하다처럼 오히려 이 책은 어느 역사책보다 더 역사적이며, 어느 문학책보다 더 문학적이게 되었다.

 

교양도서 추천 - 기초교양대학 김형근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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