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번호
54190
작성일
2018.05.31
수정일
2018.05.31
작성자
강나연
조회수
324

참 괜찮은 죽음 / 헨리마시(Henry Marsh)

참 괜찮은 죽음 / 헨리마시(Henry Marsh) 첨부 이미지

 히포크라테스 선서
  전혀 괜찮지 않다. 죽음이 괜찮을 수 있다니.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것이 죽음 아닌가. 반문의 또 다른 이름은 호기심이라더니 ‘괜찮은 죽음은 무엇일까?’하며 이내 책을 펼친다. 이 책의 원제는 ‘Do no Harm’(해치지 마라)’이다. 저자 헨리 마시(Henry Marsh)는 영국의 신경외과 의사인데, 이 제목은 의사와 관련한 유명한 지침이다. 의사가 되는 관문에서 행하는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선서’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오늘날 의사들이 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1948년 세계의학협회에서 합의된 ‘제노바선언’을 가지고 한다. 오히려 ‘제노바선언문 낭독’이라 표현될 수 있다. 그리고 ‘Do no harm’이라는 구절은 비슷한 구절이 보이긴 하지만 히포크라테스 선서 구절 그대로는 아니다.) 의학 관련 미국드라마를 보노라면 신참내기 의사에게 잠시 환자를 맡기며 선배 의사가 하는 말로도 익숙하다. 한글 제목으로는 모호했던 이 책의 컨셉을 어느 정도 가늠해질 수 있게 되었다.


  호들갑스런 포장지
  사실 이 책은 ‘죽음’으로 초점이 모아지는 것은 아니다. 원제 ‘Do no harm’에 가깝게 신경외과 의사가 만나게 되는 병과 환자 그리고 의사의 이러저러한 경험과 그를 통한 감정들을 나누는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를 통해 생소한 신경병들을 알게 되고, 때론 수술이 성패가 의사가 아닌 운에 좌지우지 한다는 놀라운 현실을 알게 된다. 환자의 완치에 더없이 기뻐할 사이도 없이 또다시 수술에 들어가야 하는 의사의 일상을, 그의 잘못이 아님에도 책임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나약한 의사를 만날 수 있다. 하자니 위험하고 안하자니 죽어가는 환자를 보며 무엇인가를 해야만하는 괴로움을 느낄 수 있다. ‘Do no harm’. 해치지 말라했건만, 그것이 어디 인간 맘처럼 되느냐는 일종의 푸념도 보인다. 그러니 ‘괜찮은 죽음’이라는 제목 보다는 원제 ‘Do no harm’이 더 적확한 책 제목이다. 저자는 정작 ‘의사=신적 존재’라는 환상을 깨고 ‘의사=인간’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한국출판사는 ‘의사=철학자’로 포장하고자 하는 욕구가 읽혀진다.

 


  ‘의사도 사람인걸’
   ‘모든 외과 의사의 마음 한구석엔 공동묘지가 있다’. 이 책의 첫 이야기 제목이다. 이 문구는 프랑스의 의사 르네 르리슈(Rene Leriche)가 쓴 글에서 비롯된다. 가장 죽음을 자주 직면하게 되는 외과의사의 심정을 대변하는 문구이다. 환자를 해치지 않으려 최선을 다하지만, 모두 다 살릴 수만은 없다. 때론 살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도 수술을 한다. 그리고 이내 죽음을 목격한다. 그 죽음의 책임이 의사에 있지 않다하더라도 의사는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을 수 없다. 그 심정을 대변하는 구절인 것이다. 조금 더 르네 르리슈의 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모든 외과의사는 자기 안에 작은 공동묘지를 지니고 다닌다. 때때로 찾아가 기도하는 쓰라린 회환의 장소, 

             그곳에서 의사는 자신의 실패에 대한 설명을 구해야 한다.”

 


  생동하는 글맛
  발랄하다. 수술의 과정을 마치 보여주는 듯 적어간 저자 헨리 마시의 문장. 눈으로 직접 사람의 머리를 칼로 가르고, 열어서 피가 나고, 또 이윽고 뇌가 드러나는 것을 본다면 절로 고개를 돌릴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문장엔 그런 처참함은 없다. 일부러 멋을 부린 것은 아니지만 담백하게 비유된 상황 묘사는 너무도 선연하게 그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수술실 안 의료진은 조용했다. 평소의 잡담과 대화는 전혀 없었다. 신경외과 의사들은

             동맥류 수술을 폭탄 처리 작업과 흡사하다고 생각한다. 자기 목숨을 걸고 하는 폭탄 제거와

             달리 환자의 목숨이 달려 있다는 게 다른 점이긴 하지만. 내가 옆에서 지켜본 신경외과 수술은

             침착하고 냉정한 기술적 운동이 아니라, 위험천만한 종양을 추정하는 사냥에 가까웠다.

             외과 의사가 환자의 뇌 밑으로 살금살금 들어가 동맥류라는 놈을 깨우지 않으려 애쓰면서 놈이

             누워 있는 뇌 안의 깊은 곳을 향해 접근한다. 그다음 놈을 포획하는 절정의 순간을 만끽한다.

             동맥류를 생포한 즉시 용수철이 달리 반짝이는 티타늄 클립으로 올가미를 씌운 다음 없애버리는

             것이다. 격렬한 추격전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환자의 생명을 구하게 된다.”

 

  환자 입장에서는 두렵고 떨리는 ‘수술’, ‘죽음’의 상황이 의사에게는 너무도 담담한 일상적 공간이며 사건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환자의 입장이라면 그런 그의 태도에서 ‘의사’라는 존재의 환상이 깨질지도 모르겠다. 아니 반대로 저자는 깨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때론 소중한 환자의 몸 하나하나가 의사들에게는 그저 수술의 ‘대상물’로 취급되는 대목들을 만날 때면 심기가 불편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괜찮은 죽음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는 ‘죽음’이 자주 등장한다. 자연스레 삶과 죽음에 대한 저자의 생각들을 엿볼 수 있게 된다. 아니 어쩌면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신이 의사라면, 아니 당신이 환자라면, 아니 당신이 가족이라면. 질문들의 예는 이러하다. ‘수술을 통해 생명은 연장되지만 온전한 삶을 살 수 없다면 그것이 죽음보다 나은 것인가?’, ‘가망 없는 수술을 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가족이 원한다면 의미 없는 수술이나 연명치료를 해야 하는가?’, ‘죽을 것이 예견되는 환자에게, 가족에게 그 사실을 어떻게 전할까?’ 등등. 답 없는 질문들이다. 예행연습 없이 문득 다가올 죽음, 여러번 경험해도 매번 처음처럼 생경한 죽음 앞에 오롯한 이성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게다가 아무리 이성적이더라도 ‘나의 일’에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인간이.
  무엇보다 ‘괜찮은 죽음’은 25개의 이야기 중 하나의 이야기 제목이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저자의 어머니이다. 그 어머니는 ‘참 괜찮은 죽음’을 맞이한다. 거의 마지막 시간 사랑하는 사람에 둘러쌓여 시간을 보냈고, 환자 스스로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죽음의 끝까지 온전한 의식을 가지고 있어 자신의 삶에 만족해했다.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더 이상 원과 한 없이 살만큼 살다가, 자는 순간 열반하는 것’이다. 슬프게도 이 방법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점.

 

 

  우리는 충분히 어리석다
  난 이 책의 일독을 권하는 이유로 ‘죽음’에 대한 재인식을 통한 우리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 삼기‘라는 진부한 교훈을 들먹이고 싶지 않다. 담담히 수술의 과정을 비유적 표현으로 묘사해가는 저자의 글맛을 느꼈으면 한다. 다소 극적인 경험들이 담겨져 있기에 마치 의학드라마를 보는 스토리 재미도 느껴진다. 즉, ‘재미’있어 권한다. 더우기 많은 부분 ‘죽음’이라는 소재 내지 주제의 글이기에 암울하고, 철학적이기만 하지 않고 산뜻해서 좋다.
  (*이 책과 연관되어 미드 ‘그레이 아나토미(Grey's Anatomy)’와 ‘덱스터(Dexter)’도 추천작)
  필자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꽂힌 키워드는 ‘죽음’ 보다는 ‘받아들임’이다. 저자가 때론 신경질적이며 불완전한 사람일 수밖에 없는, 그러나 병원이라는 공간에서는 유능한 의사이며, 존경받는 것처럼 우리들은 다중성을 가지고 있다. 곧 누구나 사람은, 아무리 위대하더라도 충분히 어리석고, 충분히 모자람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러기에 누구보다 우월의식을 가질 필요 없고, 열등의식 느낄 필요 없다는 것. ‘완벽주의자’의 불가능성에 대한 인정, 그를 통해 못 나보이는 내 자신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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