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번호
52996
작성일
2018.05.18
수정일
2018.05.25
작성자
강나연
조회수
437

질문의 책 / 파블로 네루다

질문의 책 / 파블로 네루다  첨부 이미지

 



물음표? 물음표!

 

 

 

  1990년대 중반에 파블로 네루다를 처음 만났다, 영화 「일 포스티노」 덕분에. 그러다 15년 전 중학교 선생님께서 남미로 여행을 다녀오시면서 『질문의 책』 영문판을 선물로 사다주셨고, 이후 나는 파블로 네루다의 작품들을 관심 있게 살피게 되었다. 파블로 네루다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시가 곧 삶이고 삶이 곧 시라는, 내 문학살이의 방향을 다듬는 계기가 되었으므로.
  중학교 시절 문학을 사랑하는 국어 선생님은 나에게 문학적 스승이 되어 주셨고, 감사하게도 지금도 한결같으시다. 선생님은 스승의 날에 학생들에게 선물을 받지 않으시고 역으로 학생들에게 선물을 주곤 하셨다. 중학교 시절 도서반과 문예반을 겸하면서 문학적 멘토가 되어 주신 선생님과 중학교 졸업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았고, 15년 전 선생님은 나에게 파블로 네루다의 The Book of Questions을 선물해 주신 것이다, 스승의 날에. 그리고 나는 5년 전 한글 번역판이 나오자마자 선생님께 선물로 드렸다. 이 책을 번역한, 네루다 전문가 100인에게 주는 메달을 받은 적이 있는 정현종 시인의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시집과 함께.

 

  『질문의 책』은 1971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칠레의 이른바 ‘국민시인’인 파블로 네루다가 쓴 시집이다. 이 시집은 그가 세상을 뜬 이듬해에 출간된 유고시집이어서 더욱 의미 있다. 그가 한평생 삶을 갈무리한 책이어서 더더욱 그렇다. 이 시집을 읽노라면 마치 시로 쓴 유서를 훔쳐보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이 시집에는 모두 74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독특하게도 작품마다 제목이 없다. 대신 1에서 74까지 숫자가 제목을 대신하고 있다. 그리고 각 연마다 물음표가 달려 있다. 이 시집을 읽노라면 316개의 물음표가 우리의 온 마음을 구석구석 헤집는 진귀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사유를 다독이는 탁월한 구성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여전하다.

 

누구한테 물어볼 수 있지 내가
이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게 하려고 왔는지?

 

왜 나는 원치도 않으면서 움직이고
왜 나는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지?

 

왜 나는 바퀴도 없이 굴러가고
날개나 깃 없이 날며

 

그리고 왜 나는 이주를 결정했지
내 뼈가 칠레에 살고 있는데?

 

- 「31


  그가 삶을 마감하기 전 쓴 작품으로 가장 가슴에 와 닿는 작품이다. “누구한테 물어볼 수 있지 내가/ 이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게 하려고 왔는지?” 이 부분만으로도 더없이 숙연해지는 작품이다.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내가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그는 알까
그리고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왜 우리는 다만 헤어지기 위해 자라는 데
그렇게 많은 시간을 썼을까?

 

내 어린 시절이 죽었을 때
왜 우리는 둘 다 죽지 않았을까?

 

만일 내 영혼이 떨어져나간다면
왜 해골은 나를 좇는 거지?

 

- 「44」

 

  인용 작품도 위 「31」과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는 몇 년 전 서울 대형서점 외벽에 걸려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기도 했다. 그러게, 나였던 그 아이는 지금 어디 있는 걸까.
  “바다의 중심은 어디일까?/ 왜 파도는 그리로 가지 않나?”(「21」), “사랑, 그와 그녀의 사랑,/ 그게 가버렸다면, 그것들은 어디로 갔지?”(「22」), “우리의 삶은 두 개의 모호한 명확성/ 사이의 터널이 아닐 것인가?// 아니면 그건 두 개의 검은 삼각형/ 사이의 명확성이 아닐 것인가?”(「35」), “무지개는 어디서 끝나나,/ 당신의 영혼에서인가 아니면 지평선에서인가?”(「42」), “내가, 무너져, 계속 잠을 잘 때/ 나는 내 냄새와 내 고통을 가질 것인가?”(「61」),  “소금 사막에서/ 꽃을 피울 수 있을까?// … 뼈들도 사라져버리면/ 마지막 먼지 속에는 누가 사나?”(「62」), “왜 나뭇잎들은 떨어질 때까지/ 가지에서 머뭇거릴까?(「74」)” 들도 밑줄 그어가며 외었던 부분들이다.
  『질문의 책』을 번역한 정현종 시인은 “질문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모르는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며, 홀연히 ‘처음’의 시간 속에 있는 것이고, ‘끝없는 시작’ 속에 있는 것이다.” 라고 시집 뒷면 「옮긴이의 말」에 덧붙였다. 질문에 대한 내 생각을 한순간에 정리한 글이어서 그날 일기장에 옮겨 적은 부분이다.

 

  이외에도 가슴에 턱 턱 꽂히는 시구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정체성을 헤아리는 다음의 물음들은 더러 나를 일깨우는 울림이어서 무척 소중하다. “빗속에  서 있는 기차처럼/ 슬픈 게 이 세상에 또 있을까?”(「3」), “버려진 자전거는 어떻게/ 그 자유를 얻었을까?”(「15」), “항상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사람에 비해 더 고통스러운가?”(「42」), “파도는 왜 내가 그들에게 물은 질문과/ 똑같은 걸 나한테 물을까?”(「49」), “그리고 바위에는 왜 그렇게/ 주름과 구멍이 많을까?”(「50」), “오늘 아침 나는 벌거벗은 바다와/ 하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나?”(「58」), “만일 모든 강들이 달콤하다면/ 바다는 어디서 그 소금을 얻지?”(「72」).
  글을 한평생 화두로 삼는 나에게 “사전은 하나의 무덤인가/ 아니면 봉해진 벌집인가?”(「67」)도 인상 깊고, 이저리 사랑이 넘치는 5월에 “어떻게 거북이에게 말할까/ 내가 그보다 더 느리다는 걸?// 어떻게 벼룩한테 물을까/ 그의 선수권이 몇 개나 되는지?// 또는 카네이션한테 말을 할까/ 내가 그들의 향기에 감사한다는 걸?”(「63」)도 가슴 먹먹하게 다가온다.
  세월이 흐를수록 시간 감각에 예민해질 때면 “봄은 왜 다시 한 번/ 그 초록 옷들을 주는 것일까?”(「15」),  “새에서 새로 날아가는 꽃을/ 사람들은 뭐라고 부르지?// 너무 늦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게 낫지 않나?”(「20」), “하루에는 얼마나 많은 요일이 들어 있고/ 한 달에는 얼마나 많은 해〔年〕가 들어 있을까?”(「23」), “최근의 봄 나뭇잎들한테/ 새로운 게 무엇일까?// 겨울에, 나뭇잎들은/ 뿌리와 함께 숨어 살까?// 나무가 하늘과 대화할 수 있기 위해/ 땅에서 배운 게 무엇일까?”(「41」), “그리고 십이월과 일월 사이에 있는/ 달의 이름은 무엇일까?// …// 봄은 꽃피지 않는 키스로/ 당신을 속인 적이 없는가?”(「46」), “가을은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는 건 사실일까?”(「74」) 구절들도 나를 뒤흔든다.
  관계의 문제에서 마음을 다치는 날에는 “사막의 여행자에게/ 태양은 왜 그렇게 나쁜 동행인가?// 그리고 왜 태양은/ 병원 정원에서는 그렇게도 마음 맞는 친구일까?”(「31」), “우리는 친절을 배우나/ 아니면 친절의 탈을 배우나?”(「64」)  “바다에 닿지 못하는 강들은/ 어떤 별들과 이야기를 계속할까?”(「69」) 들에서 위로를 받는다.

 

  『질문의 책』을 그저 읽어 넘기면 짧고 쉬운 어휘들에서 큰 감흥을 이끌어내지 못할 수도 있다. 이 책의 묘미는 소리 내어 거듭 읽는 데서 찾을 수 있다. 한 편 한 편 소리 내어 읽다보면, 한 번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읽다보면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드는 삶의 이랑과 고랑에 얽힌 질문의 이야기들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말들에 내려앉은 먼지들을 떨어내며 소리 내어 읽노라면 어느 순간에 정박해 있는 내 삶이 결코 허허롭지는 않다는 사실로 마음이 훈훈해질 것이다.

 

  “시인으로 계속 산다면, 이 시집에 대한 답으로 시집 한 권, 꾸려보는 것은 어떨까?” 15년 전 선물로 받은 책 앞에 선생님께서 적어주신 말씀이다. 아, 그리 해야겠구나, 결심은 했지만, 아직 그 성과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그러나 내 버킷 리스트 가운데 하나로 여전히 유효하다. 오늘이 가기 전에 답변시를 한 편이라도 써 볼까.
  그러나 『질문의 책』이 각별하게 여겨지는 것은 질문을 받으면서 답을 찾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을 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얼마나 경이로운 순간인가.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세심하게 이끄는 『질문의 책』을 받아든다는 것은.



추천 - 기초교양대학 문선영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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