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번호
52635
작성일
2018.05.14
수정일
2018.05.14
작성자
강나연
조회수
83

조선의 베스트 셀러 / 이민희

조선의 베스트 셀러 / 이민희  첨부 이미지

조선의 베스트 셀러   

이민희 지음             


  2006년 개봉한 영화 <음란서생>의 첫 장면을 보면 장옷을 뒤집어쓴 여인들이 어두운 밤거리를 분주히 오가며, 으슥한 골목의 어떤 장소에서 은밀한 거래를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들이 이렇게 은밀히 주고 받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소설책이다. 조선 후기는 소설의 시대였다. 알려진 국내 고소설 작품만 해도 약 860여종에 이르며 다양한 형태의 이본을 모두 합하면 수만 종을 헤아리고도 남는다고 한다. 짧은 한문단편소설부터 180책이나 되는 대하장편소설까지 그 종류와 형태도 다양했다. 이러다보니 소설에 대한 시각 역시 곱지많은 않아서 조선 후기 최고의 학자 중 한 명이었던 정약용은 패관잡서, 즉 소설책에 대해 “음탕하고 추한 어조가 사람의 심령을 허무 방탕하게 하고, 사특하고 요사스러운 내용이 사람의 지혜를 미혹에 빠뜨리며, 황당하고 괴이한 이야기가 사람의 교만한 기질을 고취시키고, 시들고 느른하며 조각조각 부스러지듯 조잡한 문장이 사람의 씩씩한 기운을 녹여낸다”고 하기도 했다. 한번 소설책을 들면 공부하는 학생이나 종묘사직을 책임져야 하는 고위 관료, 집안 살림을 맡은 부녀자들 모두 책읽기를 마칠 때까지 다른 일을 소홀히 하여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소설에 빠져 든 이들은 모두 패가망신한다는 것이다. 소설은 예나 지금이나 다른 시간과 세상 그리고 삶을 체험하는 손쉬운 흥밋거리이다. 특히 오늘날에 비해 즐길거리가 부족했던 그 시대 사람들의 입장을 생각해본다면 소설에빠져 밤을 꼬박 지새우고, 책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일이 그렇게 낯선 일은 아니다.
 이 책 <조선의 베스트셀러>는 조선 후기 독자들의 강렬한 욕구에 따라 소설이 유행하고 세책업이 성행하던 세태에 대한 풍속화이다. 이 책은 유통방식, 독자, 인쇄기술의 역학적인 관계를 통해 조선 후기 사회상을 다각적으로 조망한다. 특히 소설의 유행과 그 유행을 가능케 했던 유통방식으로서의 세책업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다. 책쾌는 서적 중개상이자 편집자로 세책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들은 책의 유통을 통해 이익을 취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독자의 구미에 맞는 대중적이고 통속적인 책들을 구비해 놓고 영업을 했다. 이 책에는 세책방에서 주로 유통되었던 세책본 소설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도 많이 담고 있다. 표지를 두껍게 만들고 책장마다 들기름을 발라 두는 것은 물론이고 책장을 넘길 때 닳는 부분을 염두에 두고 글자를 비워둔 것까지 세심하게 제작된 세책본 고소설들의 모습은 오늘날 도서대여점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 세책본 소설에서는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이 남겨놓은 글이나 그림 등 각종 낙서들도 발견할 수 있는데, 낙서의 내용은 대개 독자의 요구사항이나 욕구해소를 위한 직설적인 글귀나 음화 등으로 세책문화가 익명을 빌미로 억눌린 욕구를 배설하는 오늘날 인터넷 댓글과 유사한 역할을 했음도 짐작하게 한다.
 조선 시대 사람들의 욕구와 인성의 해소 수단인 소설과 그 유통방식으로서의 세책업은 상호보완하며 한 시대의 문화적 유행을 주도하였고, 20세기 초반까지도 수많은 소설들이 규방 여성들과 서민들의 무료한 밤을 달래주었다. 대중의 취향이 바뀌고 인쇄기술의 발달로 세책본 고소설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 속에 담겨 있던 이야기들에 매료된다. 이야기의 힘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는 것이다. 이 책이 보여주는 당시 사람들의 소설 읽기 풍경에서 우리는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옛 사람들의 일상과 삶의 진면목을 발견해볼 수 있을 것이다.

추천 - 박기현 교수 (기초교양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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