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번호
52634
작성일
2018.05.14
수정일
2018.05.14
작성자
강나연
조회수
66

전을 범하다 / 이정원

전을 범하다 / 이정원  첨부 이미지

전을 범하다  

이정원 지음        

  흔히 고전, 클래식(Classic)이라고 하면 단지 오랜 시간을 지나온 고풍(古風)을 넘어서 그 속에 복잡하고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으며, 뛰어나고 모범적인 작품이라는 의미를 떠올린다. 하지만 고전 작품들 역시 그 속을 들여다보면 지금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의 이야기들과 마주하게 된다. 눈을 뜨기 위해 딸을 바다에 내던진 아비가 있고, 욕정을 채우기에 급급했던 젊은 청춘들과 잇속 계산에 바쁜 기생의 어미가 있으며, 별주부 부인을 탐하는 토끼가 있고, ‘영웅’이라 부르기엔 너무도 당돌하고 철없는 도사도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심청전>, <춘향전>, <홍길동전>과 같이 익히 유명한 고전소설에서부터 <김원전>, <김현감호>, <황새결송>처럼 상대적으로 낯선 고전소설들까지 폭넓은 우리 고전 작품들을 넘나든다. 익숙한 전(傳)의 재해석에서는 기존 문법과 가치관을 뒤흔드는 통쾌함을, 생경한 작품의 재해석에서는 신선한 고전의 매력을 맛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총 13편의 우리 고전 다시 읽기를 시도한 저자는 고전을 ‘권선징악’의 논리로만 읽어 내려가는 것부터가 잘못이라는 지적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고전 작품에 대한 이 책의 재해석은 때로는 도발적이고 발랄하다. <심청전> 하면 우리는 아버지를 향한 효를 떠올리지만 ‘효’라는 이데올로기를 벗어버린 이 잔혹한 소설의 실체에 대해서 생각해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아비의 눈을 뜨게 하려고 어린 소녀가 목숨을 잃는 것이 선이라면 권선징악이라는 주제는 폭력적인 것이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거룩한 도덕 교과서’ 혹은 ‘효의 상징’이라 칭송받는 이 작품의 본질은 마을 사람들과 심 봉사가 공모한 ‘심청 살인 사건’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춘향전>에서는 춘향을 제외한 모든 인물이 순수한 사랑, 열녀라는 허울 아래 이기심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고전이라는 틀 아래 감추어져 있던 삶의 실상을 폭로함으로써 기존의 해석에 도전하는 것이다.
 우리 고전소설을 다시 읽는 시도는 결국 인간의 적나라하고도 깊숙이 자리한 욕망과 마주하는 것이다. 어쩌면 너무나도 점잖게만 읽어왔던 우리 옛 소설의 속내를 드러내면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현대인의 모순과 탐욕, 정치와 폭력을 생생하게 재발견하는 경험이다. 이 과정에서 독자들이 느낄 즐거움과 신선함이 이 책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고전의 진정한 가치는 시대를 뛰어넘어도 그 시대에 맞게 새롭게 해석될 수 있고, 무수한 변주가 가능하며, 읽는 이가 저마다 처한 상황과 처지에 따라 제각기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탄탄한 작품이라는 데 있다. 우리는 고전이라는 말만 들어도 머리가 아파오는 조건반사를 가지고 있다. 이것 또한 우리가 고전을 읽어왔던 그동안의 방식에 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천편일률적인 해석에서 벗어나 저마다의 시각으로 고전을 다시 읽어보자. 이 책은 그 첫걸음을 떼어줄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추천 - 박기현 교수 (기초교양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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